본문 바로가기
Pasta

이탈리아 요리 이해하기

by v푸른하늘 2023. 5. 12.
반응형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탈리아 요리에 관해 물으면,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볼로냐,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또는 토스카나, 피에몬테, 시칠리아, 나폴리 요리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요리를 단일한 요리법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이탈리아 요리라 할 때 '이탈리아'는 지금의 이탈리아보다 훨씬 역사가 긴 지역을 말한다. 1861년까지 군주의 지배를 받은 이 지역들은 대개 서로가 적이었고, 공유하는 문화적 전통이 아주 적었다. 공통의 언어는커녕 -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인구 대부분이 일상 언어로 이탈리아어를 쓰기 시작했다 - 요리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요리에서 해산물의 비중이 큰 베네치아와 나폴리의 요리법을 예로 들어보자.
베네치아 사람과 나폴리 사람이 각자 고향 사투리로 대화한들 서로 이해할 수 없듯이 요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요리는 손재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베네치아의 절제된 레퍼토리는 나폴리의 식탁 위에서 특별하며, 나폴리의 강렬하고 격정적인 맛은 베네치아 사람에겐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720km나 떨어져 있는 베네치아와 나폴리의 차이는 고작 100km 떨어진 볼로냐와 피렌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중심지 볼로냐와 토스카나주의 중심지 피렌체라는 두 도시의 경계를 건너는 순간, 동전의 양면처럼 요리 방식의 모든 면이 뒤집힌다. 볼로냐 주방의 풍요로움은 값비싼 재료를 풍성하고 아낌없이 쓰는 요리, 즉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질감과 풍미의 대비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완전히 바로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영리하고 조심스러운 피렌체 요리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계산하며, 있는 그대로에 바탕을 두고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단순한 조화를 이룬다. 볼로냐는 송아지고기의 속을 육즙이 풍부한 파르마 햄으로 채운 후 겉은 숙성된 파르메산을 입혀 버터에 튀기듯 익히고, 얇게 저민 흰 송로버섯으로 호화롭게 감싼다. 피렌체는 호방한 크기의 티본스테이크에 올리브유의 향과 간 후추 외에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숯이 타오르는 장작불 위에서 재빨리 구워낸다. 승자는 양쪽 모두 다.

지역에 따라 음식의 특성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는 것은 이탈리아가 뚜렷이 다른 두 지형, 바로 산과 바다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긴 장화처럼 생긴 반도다. 그러면서 유럽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알프스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땅이다. 아드리아해 서쪽에 위치한 베네치아에서 롬바르디아주를 거쳐 피에몬테주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주요 평지가 알프스 기슭을 따라 펼쳐진다. 낙농업이 발달한 이들 지역에서는 요리 기름으로 버터를 쓰고, 리소토의 재료인 쌀과 폴렌타의 재료인 옥수수가 많이 난다. 북부가 산업화된 후 남부 출신 노동자들이 북부로 유입되고 나서야 스파게티와 기타 공장제 파스타가 밀라노와 토리노의 식탁에 등장했다. 
평야는 서쪽을 따라 이어지다가 이탈리아의 거대 산맥인 아펜니노에 가로막혀 지중해 해변에 다다르지 못하고 끊어진다. 아펜니노산맥은 짐승의 척추처럼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고, 가운데는 척박한 석산이 솟아 있다. 꼭대기와 산등성이 사이사이를 잇는 현대식 도로가 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계곡이 지상 낙원으로 남아 있었고, 사람과 문화, 요리법은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비교적 작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놀랄 만치 변화무쌍한 여러 기후대 역시 이탈리아 음식의 다양성에 기여해 왔다. 강한 바람을 맞는 알프스 발치의 평야 지대에 위치한 피에몬테주의 주도 토리노는 겨울이 덴마크 코펜하겐보다 혹독하지만 이탈리아를 통틀어 가장 생동감 있는 요리를 선보인다. 서쪽으로 약 145km만 가면 나오는 해안 지역은 아펜니노산맥의 경사면에 둘러싸여 부드러운 지중해 바람에 흠뻑 적셔지는 리구리아 지역은 피한지라는 말(리구리아의 영어식 표기 리비에라[Riviera}는 추위를 피해 휴양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대로 온화한 날씨를 누린다. 화초류가 무성하고, 올리브밭이 광대하며, 목초지마다 향긋한 허브가 자라나 요리에 풍부하게 쓰인다. 이곳이 페스토의 탄생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리구리아 해안을 감싸는 아펜니노산맥의 동쪽에는 이탈리아에서 제일가는 미식의 고장 에밀리아-로마냐주가 있다. 주도인 볼로냐는 기념물이나 예술가, 영웅적인 역사가 아닌 음식 이름을 딴 유일한 도시일 것이다. 에밀리아-로마냐주에는 산지와 평지가 거의 균등하게 분포해 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평야는 유달리 비옥한데, 아펜니노산맥의 물줄기가 바다로 내달리면서 쏟아낸 충적토 덕분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밀 생산지로, 볼로냐의 축복받은 수제 파스타가 바로 이 밀로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최고의 우유로 만든 치즈인 파르미자노 레자노가 여기서 생산되며, 그 이름은 에밀리아 지역의 도시 파르마와 레조에서 딴 것이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은 돼지 먹이로 쓰이고, 이 돼지의 넓적다리로 만든 파르마 프로슈토와 고기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제품이다.
북부 이탈리아가 에밀리아-로마냐의 남쪽 경계에서 끝나면, 토스카나주를 포함하는 중부 이탈리아가 시작된다. 토스카나 아래로, 아펜니노산맥뿐 아니라 산맥에서 뻗어 나온 구릉지가 해안을 따라 남하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중앙부는 사실상 산악 지대다. 이 때문에 요리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긴다.
첫째, 산기슭에서는 소를 사육하지 않고 올리브나무를 키우기 때문에 요리 기름으로 버터보다 올리브유가 흔히 쓰인다. 
둘째, 에밀리아-로마냐의 들판에서 멀어질수록 연질 밀가루와 달걀로 만든 가정식 파스타가 남쪽에서 생산하는 공장제 경질밀과 달걀 없이 만든 마카로니에 자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훑어본다 해도 위대한 이탈리아 요리의 기원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북부에도, 중부에도, 남부에도, 섬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볼로냐, 피렌체에도 없고, 베네치아나 제노바, 로마, 나폴리, 팔레르모에도 없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이탈리아 요리는 창조된 것이 아니거니와 셰프의 요리처럼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기억된 역사에 걸쳐 있는 요리이다. 또한 이탈리아반도와 섬들, 그 안의 아주 작은 마을, 농장, 대도시의 가정에서 기술과 육감이 전수되며 진화한 요리이자 집집의 부엌에서 시작된 요리이다. 물론 구족의 부엌, 상인의 부엌, 농부의 부엌이 달랐고 여전히 다르지만, 사뭇 다른 생활환경에서도 모두가 생생하게 공유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음식은 단순하든 정교하든 그 집만의 방식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식 오트 퀴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이탈리아 요리에는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집으로, 그리고 '가정식'으로 통한다. 이 경구만이 이탈리아 요리를 설명할 수 있다. 

반응형

'Pasta'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성요소2  (0) 2023.05.20
구성요소  (1) 2023.05.19
이탈리아 요리의 토대  (1) 2023.05.13
파스타는 많은 양의 물에 끓여야 할까?  (1) 2023.05.11
파스타의 전통  (0) 2023.05.10

댓글